제5 公冶長篇

논어공야장5-20~~~

예암 노마드 2013. 8. 16.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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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공야장5-20  

5-20.

季文子 三思而後行 子聞之 曰, “再斯可矣.”

계문자 삼사이후행 자문지 왈, “재사가의.”

계문자는 무슨 일을 하던 세 번을 생각하고 난후에 실천을 하니, 공자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두 번이면 된다.”고 하셨다.

 

①季文子(계문자) : 이름은 名父(명보), 시호는 文. 학식과 재지를 갖추고 충성스런 사람.

( ?BC 568) 삼환 중의 막강한 계씨가문의 영주. 문공, 선공, 성공, 양공 4대를 섬김.

②再斯可矣(재사가의) : 두 번이면 된다. 족하다.

 

春秋左氏傳 成公 九年(BC 582),

夏 季文子如宋 致女 復命. 公享之 賦韓奕之五章. 穆姜出于房 再拜曰, 大夫勤辱. 不忘先君 以及嗣君 施及未亡人 先君猶有望也. 敢拜大夫之重勤. 又賦綠衣之卒章 而入.

하 계문자여송 치녀 복명. 공향지 부한혁지오장. 목강출우방 재배왈, 대부근욕. 불망선군 이급사군 시급미망인 선군유유망야. 감배대부지중근. 우부녹의지졸장 이입.

 

여름에 계문자가 송나라에 가 공녀 백희를 송나라 공가로 들여보내고, 돌아와 공에게 보고를 하였다. 공은 그에게 위로의 공연을 베푸니, 그는 그 자리에서 한혁편의 시제오장을 노래불러 좋은대로 시집갔다고 칭송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자 백희의 모인 목강이 방에서 나와, 계문자에게 재배하고 말하길, “대부께서 애를 쓰셨습니다. 돌아가신 선군을 잊지 않으시고 충성을 대대로 바치고, 미망인인 제게까지 덕을 베푸셨으니 돌아가신 선군께서는 앞으로도 기대하실 것입니다. 나는 대부의 큰 수고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하고, 녹의편의 끝장을 부르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集註 程子曰

爲惡之人 未嘗知有思 有思 則爲善矣 然 至於再則已審 三則私意紀 而反惑矣 故 夫子 譏之

위악지인 미상지유사 유사 칙위선의 연 지어재칙이심 삼칙사의기 이반혹의 고 부자 기지

 

정자가 말하기를, 악을 행하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함은 선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에 이르면 이미 충분히 살핀 것이다. 세 번 생각하면 사의가 일어나 오히려 미혹된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비판하신 것이다.

 

詩經 韓奕(한혁)編 第五章을 보자면,

蹶父孔武 궤도공무 / 궤보는 용맹이 떨치는 사람

靡國不到 미국부도 / 온 나라에 이르지 않음이 없음이

爲韓姞相攸 위한길상유 / 딸 보내 살릴만한 곳을 찾아

莫如韓樂 막여한락 / 한 만한 곳 없음을 알아냈도다.

孔樂韓土 공락한토 / 한나라는 참으로 즐거운 고장

川澤訏訏 천택우우 / 개울과 연못이 웅대하며

魴鱮甫甫 방서보보 / 방어와 연어가 뛰놀고

麀鹿噳噳 우록우우 / 사슴은 떼지어 풀 뜯으며

有熊有羆 유웅유비 / 작은 곰도 큰 곰도 있으며

有猫有虎 유묘유호 / 고양이와 호랑이도 다 있도다.

慶旣令居 경기영거 / 이리도 좋은 땅에 보내 놓으면

韓姞燕譽 한길연에 / 내 딸은 일생을 즐거이 살리라.

 

詩經 邶風編 綠衣 끝장을 한 번 더 보면,

絺兮綌兮 凄其以風/ 치혜격혜 처기이풍 / 굵고 가는 베옷에 바람이 차갑구나.

我思古人 實獲我心/ 아사고인 실획아심 / 나는 옛사람을 생각하니 진실로 내 마음을 찾았다네.

 

春秋左氏傳 成公 十六年(BC 575),

范文子謂欒武子曰, 季孫於魯 相二君矣. 妾不衣帛 馬不食粟 可不謂忠乎. 信讒慝 而棄忠良若諸侯何. 子叔嬰齊 奉君命無私 謨國家不貳. 圖其身 不忘其君.. 若虛其請 是棄善人也. 子其圖之.

乃許魯平 赦季孫.

범문자위란무자왈, 계손어노 상이군의. 첩불의백 마불식속 가불위충호. 신참특 이기충량약제후하. 자숙영제 봉군명무사 모국가불이. 도기신 불망기군.. 약허기청 시기선인야. 자기도지.

내허노평 사계손.

 

범문자가 난무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계손행보는 노나라에서 두 군주를 섬겨 재상으로 있었으나, 첩에게는 비단 옷을 입히지 않았고, 말에게는 좁쌀을 먹이는 일이 없었으니 충성스럽다고 이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모함을 믿어 충성스럽고 훌륭한 그 사람을 버리면

제후들의 비난을 어찌 할 것입니까? 그리고 노의 자숙영제는 영제는 군주의 명을 받들고 와 사심이 없어, 나라를 위하여 딴 마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분수를 생각하고 그의 군주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그의 요청을 헛되이 할 것 같으면 그건 착한 사람을 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이 일을 잘 헤아려 주십시오.” 이에, 노나라의 요구대로 평화스럽게 함을 허락하고 계손행보를 놓아 주었다.

(위 글은 晉나라의 범문자가 계문자를 구해내는 말로,

노나라의 宣伯(선백), 즉 叔孫僑如(숙손교여)는 노나라 군주인 성공의 생모 목강과 간통하고,계문자와 맹헌자를 제거하여 그들의 가산을 차지하려고 음모를 꾸몄는데, 晉나라의 극주에게 사신을 보내어 진나라에 가있던 계문자를 잡아 죽이게 했었다.)

 

春秋左氏傳 襄公 五年(BC 568),

季文子卒 大夫入斂 公在位. 帝庀家器爲葬備 無衣帛之妾 無食粟之馬 無藏金玉 無重器備. 君子是以知季文子之忠於公室也. 相三君矣 而無私積 可不謂忠乎.

계문자졸 대부입렴 공재위. 제비가기위장비 무의백지첩 무식속지마 무장금옥 무중기비. 군자시이지계문자지충어공실야. 상삼군의 이무사적 가불위충호.

 

계문자가 세상을 떠남에 대부들이 그의 집으로 가 염을 했고 군주도 그 자리에 있었다.

계문자의 가신장이 기물을 갖추어 장례식 준비를 하였는데, 집에 명주 베의 옷을 입은 첩이 없었고, 곡식 먹는 말이 없었으며, 금옥의 보배가 없었고, 같은 기물 둘 이상 있는 것이 없었다.

그걸 본 군자는 그 일들로써 계문자가 공실에 대해 충성을 바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세 군주 밑에서 재상노릇을 해도 사사로이 쌓아둔 재화가 없었으니 충성스러웠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했다.

[출처] 논어공야장5-20-----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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