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 公冶長篇

논어공야장5-16 ~~~

예암 노마드 2013. 8. 1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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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공야장5-16  

5-16.

子曰, “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

자왈, “안평중선여인교, 구이경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평중은 남과 잘 사귀었다. 오래 되어도 남을 잘 공경했다.”

 

①晏平仲(안평중) : 성은 안, 이름은 영. 자는 중, 시호는 평. 子라는 존칭이 붙었다. 제나라의 명상으로 영공, 장공, 경공을 섬겼다.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 사후 100여년, 안자라는 관안 열전의 주인공으로, 사마천은 나는 안자를 참으로 흠모한다. 안자가 생존해 있다면 나는 안자를 위해서라면 마부가 되어 채찍을 드는 일이라 할지라도 마다하지 않으련다.”했다.

공자와 동시대의 인물로 공자보다 약간 선배이며 자산보다는 후배. 관안열전의 안자가 곧 그이다. 공자는 안영을 두 번 만났다. 30(BC 522)에 제나라 경공이 안영과 같이 노나 라를 방문했을 때와 노나라 소공이 제나라로 망명했을 때 공자도 방문하였다.(35, BC 517) 공자는 제나라의 대부 고소자를 통해 경공을 알현했다.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의 요체를 묻자, “군군 신신 부부 자자.”(안연 12-11)로 답했다.

어리석고 줏대가 없는 경공은 공자를 등용하려 했으나, 안영이 반대함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에 공자는 서둘러 제나라를 떠났다. 안영은 근검절약과 실용주의를 높여, 지나치게 허례허식을 차리고 낭비를 조장하는 유교적 의식주의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첫째, 공자의 천명사상이 불가(천명에 의하면 게을러지므로 근검역행의 기풍이 사라진다.

둘째, 공자의 예의중시가 불가(예의란 형식이며 형식은 실질을 담는 그릇. 실질보다 형식을

따지는 것은 본말전도)

셋째, 공자의 후장중시가 불가(장례는 형편에 맞게 과도한 치상비용은 국력을 낭비)

그는 재상이 된 후에도 식사에는 육류를 올리지 않았고 소찬으로 먹었으며, 처첩에게 비단 옷을 입히지 않았으며, 조정에서 임금이 하문하면 공과를 생각지 않고 곧고 바른 말로 응답하고 자기행동을 바르게 하는데 힘썼다. 임금의 다스림이 올바를 경우 그 명 에 순종하고, 올바르지 않을 경우 옳고 그름을 가리어 실행했다.(관안열전)

재상 안영은 키가 매우 작았으며(6척 140-150센티미터), 매우 근검한 인물로 귀천을 불문하고 인재를 과감히 등용하였다. (인물평전 안자 참조)

 

②久而敬之(구이경지) : 안영을 주어로 보면, ‘사람을 오래 사귈수록 더욱더 공경스럽게 사람을 대한다.’(新註)는 뜻이고, 타인을 주어로 보면, ‘오래 사귈수록 더욱더 존경을 받는다.’ (古註. 황간의 고사본에는 久而人敬之’(구이인경지)로 되었다.

 

集註

晏平仲 齊大夫 名嬰. 程子曰, “人交久則敬衰 久而能敬 所以爲善.”

안평중 제대부 명영. 정자왈, “인교구칙경쇠 구이능경 소이위선.”

 

안평중은 제나라 대부로 이름은 영이다. 정이천이 말하길, “ 사람들은 사귐이 오래되면 공경함이 쇠퇴해 진다. 교제가 오래되어도 공경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교제를 잘하였다.”

[출처] 논어공야장5-16---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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