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成語

흔주누견,척사환초,欣(기쁠흔)奏(아뢸주)累누遣(보낼견) 하고 戚(겨레척)謝사歡환招(부를초) 라~~~

예암 노마드 2013. 6. 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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欣奏累遣하고 慼謝歡招라.
(흔주누견하고 척사환초라.)
기쁜 일은 아뢰어지고 근심은 내쳐지며,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은 손짓하여 부른다.

한적한 곳에 살면서 몸을 감추어 세상의 풍속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항상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산다면 마음에는 거리낄 것이 없고 또한 걱정할 일이 없어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만이 찾아올 것입니다. 너무 꿈같은 이야기인가요? '欣奏累遣(흔주누견)하고 慼謝歡招(척사환초)라(기쁜 일은 아뢰어지고 근심은 내쳐지며,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은 손짓하여 부른다)'는 바로 그런 삶을 사는 군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직 때를 못 만나 비록 숨어 살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사는 군자(君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중국사에서 이와 같은 삶을 산 사람을 찾는다면 누가 있을까요? 필자는 문왕과 무왕을 도와 주(周)나라를 세우는 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한 강태공 여상(呂尙)을 꼽고 싶습니다. 여상(呂尙)은 본래 성(姓)이 강씨(姜氏)입니다. 여상(呂尙)은 그의 선조가 하(夏)나라 시대에 여(呂)라는 땅을 분봉 받았기 때문에, 그 봉지를 성(姓)으로 삼아 여상(呂尙)이라고도 한 것입니다. 강태공은 오늘날에는 '할일 없이 낚시하는 노인 혹은 일반인'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지만, 본래는 여상(呂尙)의 본래 성(姓)인 강씨(姜氏)에 태공(太公)이라는 호칭을 붙인 극존칭어(極尊稱語)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문왕을 만나기 전, 여상은 먼 동쪽 바닷가의 위수(渭水)에 은둔한 채 살았습니다. 생활은 가난했고 나이도 많았지만, 덕망이 높고 학문과 견문이 넓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낚시질로 세월을 보내며 자신을 알아주는 시기가 오기만을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훗날 문왕이 되는 서백(西伯 : 서쪽 제후들의 우두머리) 창(昌)이 사냥을 나가려고 점을 쳤는데, 이상한 점괘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용도 아니고, 이무기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고, 곰도 아니다. 천하의 왕이 될 사람을 도울 사람을 잡을 것이다'라는 점괘였습니다. 그 점괘를 보고 사냥에 나간 서백 창은 위수(渭水)의 북쪽 기슭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은 이상하게도 미끼도 없이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서백 창이 무엇을 낚고 있느냐고 묻자 자신은 세월을 낚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세월을 낚으면서 자신을 알아주는 시대와 사람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여상과 대화를 나누던 서백 창은, 그가 바로 점괘에서 말한 사람임을 깨닫고 자신의 수레에 여상을 모시고 와서 스승으로 삼는 한편 나라의 정치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서백 창은 강태공 여상(呂商)의 현명한 정치로 말미암아 왕업(王業)의 기반을 튼튼하게 마련했고, 서백 창의 아들인 무왕은 다시 여상의 보좌를 받아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개국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강태공 여상은 부귀영화와 권력을 찾아 세상을 헤매지 않고도,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면서 자신을 알아주는 시대와 사람을 기다려 큰 뜻을 이룬 군자(君子)의 풍모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한자익히기

 

欣(기쁠 흔) 奏(아뢸 주) 累(여럿 루) 遣(보낼 견)
慼(슬플 척) 謝(물러갈 사) 歡(기쁠 환) 招(부를 초)

군자의 삶과 실천 3 - 세월을 낚은 강태공 여상(呂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