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道德經 1張-16張~

노자도덕경 14장~~~

예암 노마드 2014. 2. 2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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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도덕경 14장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시지불견   명왈이    청지불문   명왈희   박지불득   명왈미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차삼자   불가치힐   고혼이위일 

其上不攸  其下不忽  繩繩不可名

기상불유   기하불홀    승승불가명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복귀어무물   시이무상지상 

無物之象  是謂惚恍

무물지상   시위홀황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영지불견기수   수지불견기후 

執今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집금지도   이어금지유    능지고시    시위도기

 

-왕필본,백서본,곽점본-





<무한진인 해석>


(내면을 향해서)

이것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으니,

평평하여 두드러지게 드러나 보이는 것이 없다고 해서,

이를 일러 "夷(이)"라고 부르는 것이오. 

 

(내면의 귀로)

이것을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니,

희미해서 뚜렷하지 못하고 어슴푸레하여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希(희)'라고 부르는 것이오.

 

(마음의 촉감인 느낌으로)

이것을 찾으려 해도 체험을 얻을 수가 없으니,

너무나 미세해서 아예 없는 것과 같으므로,

이를 일러 "미(微)"라고 부르는 것이외다. 

 

이세가지는 각각 별도로 이치를 따져 물을 수가 없소.

왜냐하면 모두가 뒤섞여진 일체이기 때문이오. 

 

그 위는 쉴틈 없이 움직이고,

그 아래는 찰나의 움직임도 없소. 

이것은 연 이어져서 뱅글뱅글 돌아가므로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수도 없소이다.

 

(삼라만상이 사라진)아무것도 없음의 본래상태로 되돌아 오면,

이를 일러 모양없음의 모양, 즉 空이라고 하는 것이오. 

 

이 아무것도 없음 상태는 

아득하고 멍한 황홀상태라고 묘사할 수가 있겠소이다. 

 

(그래서)

이것을 맞이해도 어디로부터 시작됬는지 알수 없고,

이것을 쫏아 다녀도 어디가 끝인지 찾을 수 없는 것이오. 

 

(따라서)

지금 여기의 현존(現存)상태에 확고하게 머물러서,

지금여기서 "있음"과 일체가 됨으로써,

능히 태초의 시원(始原)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외다. 

이것이 바로 道로 들어가는 실마리라고 말할 수가 있겠소이다.   






<空해석>


도덕경 14장의 道의 가리킴은 경험 내지 감<感>이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작은 경험을 토대로 그것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 될 수 있지 결코 


이성적인 이론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는 추운 겨울에 난로에서 따뜻한 온기가 나와서 난로에 손을 대는 일이 


발생할수 있지만, 어른이 아이에게 이론적으로 무슨말을 해도 억지로 못하는 할 수 있을뿐, 아이에게 완벽


하게 이해시키는건 불가능하다.


즉, 모든 이성적인 이론의 바탕은 이 경험과 감의 영역이다.






우리의 현대문명은 물질과 과학에 치우쳐서 자신의 직감을 무시한 채 살아가다보니, 이제는 직감을 아예 


없는 셈 치며 이것을 들먹이는 사람을 사이비취급 하기도 한다. 


즉,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오감의 영역인 반드시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어야 신뢰를 하는데, 이것의


원인은 다름 아닌 획일화되고 단일화된 기성복 형태인 유행 또는 공감대 영역에서 자신을 동일시 하며


다수의 영역에서 편하게 그리고 남들의 눈치를 안보고 살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자기 보존 욕구는 뛰어나지만 반대편인 자신의 정체성 확립이 없기 때문에 개성이 강한


사람(정체성)을 보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의 질투심 때문에 공격을 한다.


세상을 이루는 음양의 조화를 어기고 한쪽으로 치우치면 결국 반대편을 창조하며 한쪽은 편하게


그리고 한쪽은 불편하게 되어 조화가 깨지므로 결국 고통 받게 된다.






글을 쓰다보니 좀 엉뚱한 대로 빠진거 같은데, 다시 돌아와서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사고하는 모든 것은


바로 경험과 감으로 하지만, 현대문명은 이것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아무리 분석하더라도 삶의 고통을 해결 할 수가 없다.  나누고 쪼개고 비교하면 할 수록 더욱더


그것의 소용돌이속에 빠지는 자신을 보게 될 뿐,  이성의 판단을 버리고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道의 본체와


하나가 되어 합일 된다면 전에는 할 수 없었던 놀라운 통찰력과 지혜가 생겨난다.






도덕경 14장의 핵심


모든 이성적인 사고의 바탕은 다름 아닌 자신의 경험과 감에 의한 믿음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말을 하더라도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법


당신이 세상을 어떻게 보던 세상은 늘 이렇게 흘러왔고 앞으로도 이럴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자신을 바꾸는 게 훨씬 현명하다.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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