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成語

거안제미 擧案齊眉[들 거/밥상 안/가지러할 제/눈썹 미 ] ~~~

예암 노마드 2013. 7. 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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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안제미 擧案齊眉[들 거/밥상 안/가지러할 제/눈썹 미 ]

☞밥상을 눈 위로 받들어 올린다. 아내가 남편을 지극히 존경함. [출전]『양홍전』[내용]남편을 깍듯이 공경함으로써 내외가 서로 신뢰를 쌓고 가정을 화목하게 함을 이르는 교훈의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양홍전(梁鴻傳)〉에 보인다.  후한 때 양홍(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비록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만은 꿋꿋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는 뜻하는 바 있어 장가를 늦추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같은 마을에 사는 얼굴이 못생긴 맹광(孟光)이란 처녀가 나이 서른이 넘는 처지에서도 “양홍 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절대로 시집을 가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러자 양홍은 그 처녀의 뜻이 기특해 그 처녀에게 청혼을 하였고 곧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양홍이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 색시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자 색시가 궁금하여 그 까닭을 물었다. 이에 양홍이 대답하기를,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을 걸치고 짙은 화장을 하는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 옷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라도 살 수 있는 여자였소.”라고 하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부터 아내가 화장도 않고 산골 농부 차림으로 생활하다가 남편의 뜻에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양홍이 농사일의 틈틈히 친구들에게 시를 지어 보냈는데, 그 중에서 몇몇 시가 황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발각되어 나라에서 그에게 체포령이 떨어졌다. 이에 환멸을 느낀 양홍은 오(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皐伯通)이라는 명문가의 방앗간지기로 있으면서 생활을 꾸려나갔다.

〈양홍전〉의 한 구절에, ‘매귀처위구식 불감어홍전앙시 거안제미(每歸妻爲具食 不敢於鴻前仰視 擧案齊眉;양홍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 아내는 늘 밥상을 차려 양홍 앞에서 감히 눈을 치뜨지 않고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 바쳤다.)’라는 말이 보인다. 또 고백통은 이 부부의 사람됨을 예사롭지 않게 여겨 여러 면에서 도와주어 양홍이 수십 편의 훌륭한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남편의 인품을 존경하며, 그의 의지를 따르고 극진한 내조로 집안을 화목하게 꾸려 남편으로 하여금 마음놓고 학문을 파고들어 명저(名著)를 저술할 수 있게 하였으니, 이 내외가 반듯한 인생을 완성한 것이다.[원문]梁鴻字伯  扶風平陵人也 家貧而尙節介 同縣孟氏有女  肥醜而黑 力擧石臼 擇對不嫁 曰欲得賢如梁伯者  鴻聞而聘之 字之曰德曜 名孟光 至吳爲人賃  每歸 妻爲具食 不敢於鴻前 仰視 擧案齊眉[예문]특히 가정과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서로 존중하고 도와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성은 아이의 임신, 출산, 그리고 양육을 떠맡고, 남성은 가족 구성원들의 보호와 부양을 담당하는, 남녀간의 역할과 의무라는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세에 맞서 '거안제미'에 맛붙인 우리네 남성들은 어떻해야 하나? 그런 남성들에게 '평등부부상'을 수상한 정동년 광주남구청장의 말이 대세를 헤쳐나갈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가사 노동분담이란 획일적인 일 나누기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면 해야할 일이 어떤것인지 금방 알게 되지요"  <2002.1굿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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