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道德經 1張-16張~

노자도덕경9장,도인은 功을 이루면 물러난다~~~

예암 노마드 2014. 2. 2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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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도덕경9장,도인은 功을 이루면 물러난다. 

 

[原文]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兌(木兌)之  不可長保

지이영지        불여기이               췌이태(탈)지         불가장보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금옥만당         막지능수        부귀이교       자유기구

 

功遂身退

공수신퇴

 

天之道

천지도

 

 

[解釋]

 

지니고 있으면서 가득 채우려는 것은 그만두는 것 만 못하오. 

 

단련을 해서 변한 의식의 체험과 능력은 오래 보존 될 수가 없소. 

 

집안에 금옥이 가득 차면 그것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소이다. 

 

부귀하면 교만해져서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되니, 

 

결실이 이루어지면 자신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이치외다. 

 

 

[解說]

 

이번 9장은 수행자에게 도에 대한 과도한 수행공부와 수행으로 나타난 자기능력이나 체험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 내용같읍니다.

무엇이든지 너무 과도하게 흘러 넘치기 전에 그만두라는 보편적인 훈시로서 적용해도 아주 훌륭한 교훈입니다.

전체적 내용을 얼뜬 일견하면, 마치 재물이나 욕망을 과도하게 탐내지 말고,어느 한계를 이루면 물러서라는 일반적인 훈시같읍니다만,

내면에 숨겨진 내용은 높은 경지에 조금 못 밑친 상근기 구도자인 제자에게 이제부터는 수행공부를 그만두라는 가르침으로 보여집니다.

 

9장의 전체 문장 구성을 들여다 보면,

첫째줄 네구절은 수행자에게 수행공부를 과도하게 행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나며, 유위적(有爲的)으로 변화되거나 얻어진 결과(체험이나 능력)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수행자인 제자에게 직설적으로 말씀한 내용 같읍니다.

 

둘째줄의 네구절은 수행으로 얻은 체험이나 능력,그리고 학식등을 쌓아 놓으면,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어렵고, 그러한 능력을 활용하는 것은 스스로 도로 부터 멀어지는 허물이 생긴다는 것을, 일반인의 재물의 축적에 비유해서 말씀하신 듯 합니다.

 

마지막 구절은 도를 이루었으면 물러나 조용하게 있는 것이 '도인의 옳바른 자세다' 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제 해석해 보겠읍니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

持; 가지다,지니다,버티다. 盈; 차다,가득차다,충만하다,남다. 如; 같다, 已; 그치다,말다,이미,너무,뿐

 

持而盈之;  지니고 있는데 가득 채우려는 것은,

不如其已; 그것을 그치는 것만 못하다.

 

붙혀서 해석하면,

< 지니고 있으면서도 가득 채우려고 하는 것은,

  그 행위를 그치는 것만 못하다>

 

이 첫구절은 이9장의 주제이면서, 결론적인 서문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세상 모든 욕망과 일,정신적 물질적인 모든 현상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충고입니다.

흘러 넘치기전에 붓는 것을 그치라는 충고입니다.

끝을 보기전에 그만 돌아서라는 자기절제의 미학이죠.

 

도 수행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기서 지니고 있는 것(持)이란 사람이 항상 가지고 있는 道, 즉 원래 본성(참나)을 말하는 것입니다.

持而란 "지니고 있는 것은"이란 뜻이죠.

원래부터 道는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대부분은 이사실을 모르고 있죠.

이것이 無知라고 하죠.

 

노자도인이 제자에게 수행공부가 어느정도 무르 익었으니,

이제 그만 하라는 가르침 같읍니다.

그제자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본래자기를 자각하는 마음의 빈틈을 만들어 주는 것이죠.

수행을 그치고 스스로 자신을 자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盈之란 " 더욱 가득 채우는 것(행위)는"

현재  차있으면서 더 붓는다는 것은 흘러 넘치기 때문에,

더욱 채울려고 하는 행위는 완전히 불필요한 낭비죠.

제자는 수행행위가 불필요하다는 것을 지금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가득 채울려고 한다는 것은 도를 성취하기 위한 욕망이 아직도 팔팔 살아있다는 것이죠.

 

깨달으려는 욕망으로 수행을 계속한다는 것은 아직 에고적"나"가 잔존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렇게 에고가 계속 활동하면서 수련행위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에고가 없는 "마음이 사라진 빈틈"을  자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읍니다.

그래서 노자도인은 제자에게, 不如其已- 수행을 그만둠만 못하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수행을 그만두고 자신을 돌아볼 빈틈새의 여유를 만들어 주기 위한 말씀입니다.

"수행은 이제 그만 하면 돼었 !"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이러한 수행자는 자기가 하던 수행에서 어떤 결과나 체험이 드러나길 바라면서, 계속 수행행위를 지속하게 되고, 또한 그동안 해온 수행습관의 관성력에 붙잡혀서 수행을 그만두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제자에게 수행공부는 그만하라고 다구치는 충언입니다. 

선불교 선사들은 이런 기회에 한마디 화두로써 제자가 수행을 끊게 합니다.

 

선불교의 예를 들어 보면,

어느날 한 수행승이 조주스님에게 묻읍니다.

"어떤 것이 사방에 통달하는 것입니까?"

"금강선(金鋼禪)을 버려라 !"

 "금강선을 버리라"하는 말씀은 방안에서 꼼짝앉고 좌선에만 의지하여 깨달음을 찾는

습관을 벗어 버리라는 충고지요.

 

여기서 현재 우리가 다루고 있는 왕필본이외에 시기적으로 앞선 판본이라고 알려진 백서본과

그 보다도 더 오래된 것이라는 곽점본의 내용을 참고적으로 살펴 보겠읍니다.

곽점본 殖而呈之 不不若已 :  殖; 불리다,불어나다,번성하다.심다.세우다,자라다. 呈;드리다,나타내다.

  - 불어나서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것을 끝내는 것만 못하다-       

백서본 殖而盈之 不若其已

  - 불어나서 가득 채워지는 것은 그것을 멈추는 것만 못하다-

 

위의 곽점본과 백서본의 표면적인 내용은 왕필본의 내용과 크게 다른 것이 없는 것 같읍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곽점본의 고서체글씨와 백서본의 고서체 글씨를 주석가들이 기존의 왕필본을

기준으로 재구성하여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적인 고서체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내용상으로 많이 차이가 날수도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자세하게 다루지 않겠읍니다.

 

 揣而兌(木兌,銳)之  不可長保

 揣; 헤아리다,시험하다,불리다. 단련하다.兌; 바꾸다,기뻐하다,통하다.

(木兌); 동자기둥-절, 막대기-탈, 벗을-탈, 銳;날카롭다,날래다,날카롭게 하다,작다, 창. 長; 길다,나아가다,낫다,자라다,처음,맡,늘,항상. 保;지키다,맡다,유지하다,보전하다.책임지다.기르다.

 

이부분은 왕필본에는 揣而(木兌,탈)之로 되어 있읍니다만, 컴퓨터 한자입력기에 (탈)자가 나오지 않아서, (나무 木+바꿀 兌)의 두글자로 표시했읍니다.

원래 백서본에는 揣而兌之로 되어 있읍니디만, 학자들이 兌자는 銳를 의미한다고 보고는 銳자로 바꾸어진 것이죠.

그러나 곽점본은 또 다른 글자인 湍而군之로 되어 있어서, 어느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판단이 불가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가장 적절할 것 같은 백서본의 원문글자인 兌로 하여 주해석을 했읍니다.

 

일단 여기서 여러가지로 해석을 해 보겠읍니다.

첫번째는 우리가 보고있는 왕필본입니다.

(木兌)之 不可長保-를 해석해 보면,

-1 (수행으로)단련하여 벗어나는 것은 오래보존 할 수가 없다.-

여기서 탈(木兌)자는 "동자기둥 절" 또는 건물의 작은 서까래,라는 뜻이 있읍니다만,

의미상에 있어서 어떤 연관성을 만들어 보려고 해도 조금도 찾을 수가 없읍니다.

어떤 분들은 동자기둥의 숫자를 세는것이라고 하는데, 그건 글 전체 의미와는 너무 상이하게

해석이 되므로 "동자기둥"의 뜻은 제외했읍니다.

다음으로 "막대기, 탈"이라는 뜻과 " 벗는다, 탈"은 "벗을 脫"의 通字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벗는다"를 '에고를 벗는다,'는 의미로 사용해서,위와 같이 해석이 되었읍니다.

또 한가지는 揣자를 "알음알이,헤아림(생각)"의 뜻으로 보아서 해석할 수도 있읍니다.

-2.생각(헤아림)으로(에고에서)벗어나는 것은 오래동안 보전하지 못한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지해(知解), 지성적으로 도의 본체를 이해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석을 해도 아주 그럴 듯하게 해석이 되긴 됩니다만.

 

다음은 之 不可長保,로 해석해 보겠읍니다.

-1.단련하여 날카롭게하는 것은 오래 보전하지 못한다.

-2. 헤아림으로예민하게 하는 것은 오래 보전하지 못한다.

위의 1번은 그런대로 의미가 통하는데,

2번은 헤아림으로 날카롭게 한다는 말이 좀 어색하게 보이죠.

그런데 이 銳자를 쓴 곳은 백서본의 주석서들과 왕필본 일부에서도 이銳자를 썻다고 합니다.

전체 문장구성이 잘 이해할 수가 없으니깐, 후대의 주석자들이 銳자로 바꿔서 주석한 것 같읍니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번역서들은 "단련하여 날카롭게 하는 것은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라는

내용으로 일반화 되어 있읍니다.

 

다음은 之 不可長保,로 해석해 보겠읍니다.

이 兌자는 원래 백서본의 글자 모양인데, 후대의 백서본 주석가들이 전체 의미를 맞추느라고

兌자는 銳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발표를 해서 통상 銳라고 쓰여져서 내려왔읍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이 이 兌자가 允자라고 주장하며, 允자를 썻는데, 이 允자를 써도 그렇게 기본의미가 바꿔지지는 않읍니다. 允자는 '진실로,진실,믿음,승락',이런 뜻이므로, 아주 어긋나지는 않읍니다.

- 수행으로 단련하여(또는 알음알이로) 얻은 진리는 오래 보전하지 못한다- 이렇게 해석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단 兌자로 해석해 보겠읍니다.

兌자 모양은 두발 위에 입口자가 있어서 사람이 즐겁게 웃는 모양이죠.

그래서 기쁨으로 변화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수행이나 알음알이로 어떤 변화 또는 희열(기쁨)의 체험을 얻는다,라는 의미죠.

兌는 변화한다,기쁘다,라는 뜻이 있읍니다.

그래서 兌는 의식의 변화된 체험이나 능력,지복감등, 마음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읍니다.

-1. 헤아려서 알음알이로 얻은 체험이나 능력은 오래 유지될 수가 없다-

-2. 단련하여 변화된 체험이나 능력은 오래 유지 될 수가 없다-

 

여기서 (木兌,탈), 銳,兌- 이세개의 글자가 공통된 뜻을 가진 공통점 또는 공통분모는 어떤 것일까요?

(木兌,탈)-벗는다, 銳-날카롭다, 兌-바꾼다,기쁘다.

 이세가지 중에서 공통적인 것은 단련을 해서 (어떻게)변한다, 바뀐다,-라는 의미가 공통인자죠.

그래서 여기서는 백서본의 원래 문자체인 兌자를 -(의식이) 변하여 된 어떤 ,체험,능력-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로 했읍니다.

또한 자가 "헤아리다,재본다,생각한다"는 의미도 있고 동시에 "담굼질한다,단련시키다"라는

뜻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이들 두가지 의미를 번역에 함께 이용하면 그럴듯한 번역이 될 것 같읍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탈(木兌) 대신에 兌자를 빌려서 번역을 했읍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번역이 됩니다.

<수행의 단련으로 얻은 의식적 변화(체험과 초능력등)는

 오래 보존 될 수가 없다>

 

수행의 결과로 생긴 지복감이나 신비한 체험들은 오래가지 않는 일시적인 환상과 같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죠.

그래서 선불교 조사들은"부처,조사 마저도 버리라"고 말했읍니다. 

선불교조사들과 대부분의 성인스승들은 정신수행과정에서 나타나는 경험과 신비체험, 초능력등을 일종의 수행병이라고 취급하며, 수행자들이 그런 경험에 빠져 들어가지 말라는 것에 대해 항상 주의를 주죠.

수행도 어느정도 해서 마음이 순수하게 되면, 수행에 대한 집착심을 버리고, 수행에 의하여 나타난 희열감 같은 체험,초상능력 같은것을 모두 내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들이 수행을 오래해서 의식이 순수해지면,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여러가지 의식상의 신비체험과 초상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신통이 그것인데, 이중에서 누신통을 제외하고는 5신통은 최종 절대무심상태로 나아가는데 장애물이 됩니다.

수행 중에 나타나는 이러한 신비능력과 희열감,일체감등은 일종의 의식의 변상으로써 의식이 순수해 지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의식의 변화일 뿐이죠. 그런데 많은 수행자들이 이러한 현상에 현혹되어 앞으로 더 가야 할 길을 중간에서 도중하차 하는 경우가 많읍니다.

그런 경험으로 자신이 도가 완성된 것을 착각하기도 하고, 그런 신비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서 아예 중도하차 하는 사람도 많죠.

이런 신비현상 뿐 아니라, 어느정도 순수해지면, 온갖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와 천지의 원리를 다 알수 있는 정보를 접하게 되는데, 이러한 환상때문에 수행자는 자신이 대각한 것으로 착각하여 그것을 미천으로 여러가지 사회활동을 하려는 사람도 있죠.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의식이 일시적으로 장난을 하는 것일 뿐, 항상 유지되는 것이 아니죠.

이러한 여러가지 정신적인 체험이나 초상능력등에 대하여 경고하는 메세지가 바로 이 9장에서  노자도인 말씀하시고자 한 것 같읍니다.

금옥만당 이나 부귀는 물론 재산을 지칭한 것이지만, 이러한 수행상에 나타나는 정신적 체험을 비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번역서들을 들여다 보겠읍니다.

<지니고 있음에도  더 채우려는 것은 그만두느니만 못하고, 다듬어 뾰족하게 하면 오래 보전하지 못한다>

<지속적으로 가득찬 상태를 유지하려는 짓은 그것을 그만두느니만 못하다. 물이 가득차면 넘치듯이,항상 가득 채우려는 사람은 필경 넘어지기 마련이다. 쇠를 두드려 끝을 예리하게 하드라도 그 예리함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유지하는 것이 가득 차는 것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단련시켜 예리하게 된 것은 오래도록 보전 될 수가 없다>

<지니고서 그것을 채우는 것은 때에 그침만 못하다. 갈아 그것을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전 할 길이 없다>

<무엇이든 채우기를 계속하는 것은 적당한 때에 그만 둠만 못하다. 집이 크다고 하여 아무리 기둥을 세어도 그것을 오래도록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넘치도록 가득 채워놓고 유지하기 위해 조바심 내느니 애초부터 가득히 담지 않는 것이 낫읍니다.

날카롭게 간 칼은 아무리 잘 간수하려고 애써도 그 날카로움을 오래도록 보전하기 어렵습니다>

 

위의 번역서들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대개는 揣而銳之, 즉 다듬어서 날카롭게 하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銳자를 빌려서 썻읍니다.

이것은 銳자로 하면 의미가 잘 통하고, 이해하기 쉬우니깐, 탈(木兌)를 銳자로 바꾸어서 해석을 한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銳"자를 쓰게 되면, 그 문맥만은 의미가 맞추어지는 듯 하지만,

전체적 문장구성의 의미적인 흐름면에서 보면 뭔가 좀 조화가 어긋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金玉滿堂  莫之能守 

金玉; 귀한 보물, 萬堂; 집안에 가득차다, 莫 ; 없다, 말다,아득하다. 能 ; 능히, 쉽게,

守; 지키다,유지하다.

이 문장 해석은 쉬워서 바로 직역하겠읍니다

<집안에 금과 옥이 가득차면, 그것을 능히 지키기기 어렵다.>

 

이것은 집안에 귀한 재물이 많으면 도둑들이 훔쳐가려고 엿보기 때문에 지키기도 어렵다,라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제자에게 비유적으로 앞에서 말한 지식이나 수행으로 얻은 여러 경험이나 능력은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즉, 외부적인 재물이든 정신적인 체험이나 능력이나 지식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없어진다는 말씀이죠.

 

富貴而驕  自遺其咎

富貴; 부자이면서 명예가 높은 것, 驕 ; 교만하다,씩씩하다,총애하다, 遺; 남기다,끼치다,잃다,버리다.

 

<부귀하여 교만해지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재산이 많거나 지위가 높아지면 사람은 자연히 스스로를 높히 추겨서 여기므로

상대적으로 남을 깔보며 교만해지죠.

이렇게 자기 자신의 겉모습에 현혹 당하면 스스로 자기 허물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죠.

이는 바로 정신적으로 어떤 체험이나 능력을 얻고 나서 스스로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자만하면 자신의 결점에 눈이 어두워지고, 그동안 닦은 수행마저 허사가 될 경우가 많죠.

조금이라도 자신이 "깨달은 스승" 또는 "어떤 경지에 도달했다"라는 생각을 가질 때는, 그것이 어떤 희귀한 경지이든 간에 그는 자신의 에고의식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고, 본성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앞의 첫줄은 노자도인이 "과도한 수행은 그침만 못하고, 수행 단련으로 얻은 변화는 오래가지 못한다"라고 제자에게 수행의 과도함에 대하여 직접적인 표현으로 말한 겁니다.

둘째줄은 "재산의 축적"을 비유해서 "수행과정에서 얻는 초능력과 체험에 대한 경고"로써다시 한번 설명한 내용입니다.

 

종합해 보면,

가진것을 가득 더 채우려고 하는 것은 그만둠만 못하다.

수련으로 얻은 의식체험과 능력은 오래 보존 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금옥이 집에 넘치면 능히 지켜내기 어렵다. 

부귀하고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功遂身退   天之道

 功; 공,공적, 보람,결실. 遂; 드디어,도랑,이루다,나아가다. 退;물러나다.

 

<결실을 얻었으면 자신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하늘의 이치란 바로 생주이멸, 상승 유지 하강이라는 파동성의 움직임이죠.

어떤 경지를 성취하였다면 그 결실로 에고적 자아를 만족시키거나 강화하는 방향으로 행위를 한다면, 결국 어렵게 이른 자아본성의 경지를 잃게 되겠지요.

상승의 극에 다달으면 하강하는 것이 도의 기본작용이죠.

도의 본래작용을 따라서 무위적으로 흐르는 것이

바로 도인이 가는 길이죠. 

도를 이룬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바로 진지한 도인의 자세입니다.

 

어떤 사람이 깨달았다고 소문이 나거나 널리 알려지면,

도인 지망생들과 수행자들이 자연히 그 사람 주변에 모여들게 되죠.

그사람은 이제 여러방면으로 광고가 되어 유명해집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조직이 자연적으로 형성됩니다.

그 한소식한 사람은 정신지도자가 되고, 어떤 단체를 이끄는 인도자가 되어 스스로 그 조직에 휘말릴 수 밖에 없죠.

그렇게 사회활동을 하는 중에 그에게 명예도 주어지고, 약간의 권력과 권위가 세워지겠죠.

그렇게 되면 그는 이제 통속적인 사사로운 사업가로써 명예와 권위에 젖어 갑니다.

이렇게 되면 도인이 아니고 속세의 정신지도자라고나 할까요.

자신을 도와주는 제자들에 의해서 잘못하면 조직을 소위 사이비 종교로 만들게 됩니다.

애초에는 예상도 못했던 자의반 타의반의 사이비 종교조직 교주가 될 수도 있읍니다.

그가 그동안 성취한 도와는 점점 멀어지고, 사회적인 명예는 높아지겠죠.

노자도인은 이러한 과정이 되어가는 것을 경고한 것이죠.

뒤로 물러나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조용히 은거(隱居)하라는 충고입니다.

 

이번 9장은 전체적으로는 평범한 문장이지만,

첫번째 줄 세번째 구절인 揣而(木兌)之의 구절이 번역하기가  곤란하고,

여러 판본들이 전부 글자내용이 달라서 정확하게 어떤 것을 선택해서

번역을 해야 될지 검토하는 데에 시간을 좀 소비했읍니다.

 

여기에서는 정신수행을 주관점으로 해석한 것이지만,

이세상 모든 일,재산,정치,출세,욕망,애정,사업,특히 권력등  

세상의 무엇이든간에 우리들 삶에 적용 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의 말씀이라고 할 수있죠.

 

제가 위에서 번역한 것이 정확하게 맞는다고 절대로 장담은 못하겠읍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번역내용으로 예를 들어 놓아서 그것을 참고하시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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