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道德經 1張-16張~

노자도덕경 6장,~~~

예암 노마드 2014. 2. 19. 18:06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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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도덕경 6장,

깊은 산속 옹달샘 옆에서 도를 말하다.

 

[原 文]

谷神不死  是謂玄牝
곡신불사      시위현빈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綿綿若存  用之不勤
면면약존       용지불근

 


[解 釋]

 

의식 넘어 그윽하게 깊고 컴컴한 가장 낮은 골,

내면 속에 보이지 않게 머물러 있는 신령(神靈)은 죽음이라는 것이 없소.

 

이것을 현묘(玄妙)하게 깊은 어둠의 내궁(內宮)이라는 뜻으로,
현빈(玄牝)이라고 부를수도 있겠소.

 


이 현빈이라는 컴컴한 동혈(洞穴)에는 문이 나 있는데,
이것은 천지(의식)가 생겨나오는 뿌리라고 하오.

 


이것에서 나오는 의식의 흐름은 끊이지 않고 연이어서 미세하게
흐르는데, 마치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기도 하오.

 

이 의식의 작용은 스스로는 아무런 애씀도 없이 저절로 흘러가는 것이외다.


[ 解說]

 

이 6장의 기본내용은 의식이전의 절대본체, 의식이 나오는 존재발현핵점, 그리고 의식의 작용에 대하여 단 25글자, 6구절로 간단 명료하게 설명한 내용입니다.

도의 기본 핵심개념을 깊은 계곡의 옹달샘에 비유해서 묘사를 했기 때문에,몇가지 개념 단어가 복합적인 상징 의미 또는 비유의 이중성을 포함하고 있어서,대부분의 주석자나 번역자들은 언어의 의미를 대략적으로 이해한다 해도, 특이한 단어들의 정확한 속뜻을 풀이하는데 적절한 어휘의  선택이 어려운 일같읍니다.

 

이 6장은 앞의 1장과 4장의 내용과 상통하는 점이 많읍니다,
1장은 도의 본체와 작용에 대한 전체적 개념에 대한 소개라고 말할 수 있고,4장은 수행자 입장에서 직접 도를 체험하는 체험기록이라고 할 수 있으며,6장은 자연현상(옹달샘)을 비유해서 도의 본체와 작용을 묘사한 것입니다.

 

우선 이6장에서 도의 개념을 옹달샘으로 비유해서 어떻게 묘사했는지를
간단하게 검토해 보겠읍니다.
본문의 문장구조를 보면, 맨 윗줄의 두구절, -곡신불사,시위현빈-은 
옹달샘의 물이 나오는 근원인 땅속 깊은 곳의 지하수 공동(空洞)을
道의 절대본체로 비유해서 묘사한 말입니다.

 

땅속 깊은 곳은 볼 수도 없고, 알수도 없는 암흑지대이고, 가장 낮은 곳이며,틀림없이 그 땅밑에도 어떤 거대한 공동(空洞)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 것이죠.
그래서 그 지하의 공동을 가장 깊고 어두우며 낮은 곳에 있는 골,
즉"谷"으로 표현하여 道의 본체를 "谷神"으로 묘사한 것 같읍니다.

도의 절대본체는 보이지 않고, 알수 없는 의식 넘어 저편 암흑지대에 있으며, 어두운 허공(玄空)으로써 묘사되고 있죠.


그런데 지상(의식외면)에는 어떤 자연의 변화로써 가믐으로 물이 마르더라도 땅밑(의식내면)에서 흐르는 지하수는 절대 고갈 될 수가 없죠.
이런 현상을 비유해서 "谷神은 죽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것 같읍니다.

玄牝 이라는 단어는 어둡고 깊은 지하의 동혈같은 이미지로
절대본체를  생명체가 잉태되는 여성의 자궁 속으로 비유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사실 현빈(玄牝)이라는 단어는 현공(玄空)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렇게 첫째 구절은 작은 옹달샘과 연결된 미지의 깊은 땅 밑 지하세계를, 의식을 초월한 내면의 절대본체로써 상징적으로 비유하여 표현했읍니다.

 

가운데 있는 두번째 구절인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깊은 지하에서 아주 실날같은 샘구멍을 통해서 물이 올라 오는 모습을,
절대본체의 문으로 표현하여, 이문이 천지가 나타나는 의식의 근원이라고 묘사했죠.
옹달샘 물이 송골송골 올라오는 모습을 마치 순수의식이  절대 본체의 자궁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가운데 구절은 절대와 현상세계의 완충지역인 존재의식의 발현핵점,즉 "내가 있다"는 존재에 대한 앎이 시작되는 순간을 "샘물이 나오는 구멍"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절대 현빈의 문으로 존재가 나타나면서 의식이 "웅"하고 파동성으로 나타나면, 이것이 존재라는 기본의식이 되어, 보편적 의식이지만,
시간과 공간이 나타나고, 육체라는 감각두뇌 기관에 의하여 우주삼라만상이 나타납니다.
동시에 전체 우주적인 의식은 육체에 작용하여, 의식 스스로 자기가 육체에 한정된 마음과 감각기관이라는 개체의식으로 육체를 "나"라고 제한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체의식인 마음이 그런 제한된 생각을 가질 뿐,
의식자체는 여전히 우주적이고, 보편적입니다.
이 보편적인 의식의 기본 작용이 무위적인 흐름입니다.
다음 구절이 바로 그러한 의식의 무위적인 흐름을 묘사한 것입니다.

 

다음 마지막 구절-면면약존 용지불근-
옹달샘에서 물이 흘러서 계곡을 따라서 흐르며 자유롭게 내려가는 모습을 묘사하여,
의식의 작용도 이와 같이 자신의 힘을 들이지 않고 저절로 작용한다는 메세지를 비유해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의식은 항상 "나"라는 에고를 중심으로 자신이 어떤 행동의 행위자로써 무언가를 개조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읍니다.
자연의식의 무위적인 흐름에 대한 가르침은, 바로 에고적 관점을 버리라는 말씀이죠.

이와같이 이 6장은 옹달샘을 보면서 옹달샘이 나오는 땅밑 지하세계부터 샘물구멍, 그리고 밖으로 흘러서 온갖 생물체를 저절로 생장시키는 작용까지를 비유하면서, 도의 본체와 작용을 설명한 것이죠.

 

이제 노자도인이 옹달샘을 비유해서 道의 본체와 작용에 대한 설명을 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시겠읍니다.
지금 여기서 이글을 보고 있는 모든 분들은 <타임 머쉰>을 타고 지금으로 부터 약 2500여년전의 중국 어느 깊은 산중으로 순간 이동을 하겠읍니다.

 

****
때는 중국 대륙의 춘추전국시대 중반인 bc500여년경-
중국대륙은 작은 나라들이 갈갈히 갈라져서 몇달 사이에 한고을의 나라이름이 바뀌는가 하면,전쟁으로 동네 젊은이들이 징병되어 집집마다 노인들과 부녀자들이 농사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농토는 가는데 마다 황폐하고, 곳곳에 전쟁으로 인해 일반백성들의 생활상은 말이 아니었다.

노자도인과 젊은 제자인 백은은 비참한 도시마을을 벗어나서 여러지방의 명산을 유랑하고 있었다.

 

계절은 마침 칠월 복중이라 찌는 듯한 더위에 온몸을 땀으로 목욕을 하며, 어느 큰 지방과 지방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제법 험한 산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각 나라마다 민심이 흉흉한데다 더우기 몇달 동안 비가 안와서 대부분의 마을 우물들이 바짝 마르고 논농사 밭농사 할 것없이 농작물들이 전부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


백은은 스승인 노자도인을 모시고 가면서 이 높은 산고개를 올라오기 전에 지나오던 마을에서 마실 물을 얻으려고 이리저리 헤메었으나 얻지 못한 채로 이 높은 고개를 올라왔다.

혹시나 산에 들어가면 깊은 계곡의 숨겨진 옹달샘에서 물이 고요있지 않을까 하는 예감을 기대하면서 계속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산고개를 올라왔다.
노자도인은 연세가 팔십이 가까이 다 되었는데도 아무 말없이 땀도 별로 흘리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고개를 넘어서 산중턱 쯤 내려 왔을 때에 비로소 계곡의 돌틈 사이에 물이 고여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노자도인을 옆의 평바위에서 쉬게 하고는 아주 가늘게 올라오는 물을 주먹만한 표주박으로 간신히 한가득 뫃아서 노자도인에게 먼저 올리면서 말을 걸었다.

 

"온 세상이 전부 바짝 말랐는데, 이옹달샘은 뿌리가 참으로 깊은가 봅니다."


노자 도인이 표주박 물을 받으며, 한 모금 마시고는 백은에게 넘기면서 한 말씀하셨다.
" 그래 말이야, 원래 땅위에서는 몇년동안 가믐이 들더라도 땅속 깊은 곳은 항상 신선한 물이 흐르고 있단 말야-,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 넘어 컴컴한 깊은 내면에 살고 있는 신령은 말야, 육체는 죽어서 썩고, 정신은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지만, 그 속의 신령인 곡신(谷神)은  항상 죽지를 않고 영원불멸하지-"

 

다시 백은이 한모금 마시고, 스승인 노자도인에게 표주박을 건네주며 또 물었다.
"저 땅 속 깊은 곳은 어찌 생겼을까요?"


" 그걸 누가 알겠나? 누군가가 직접 본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짐작컨데, 땅 속 깊은 곳은 사람의 깊은 내면과 다를 것이 없을꺼야,
그렇다면 땅 속도 마음의 내면과 마찬가지로 크기를 알수없이 무한하고 모양도 알 길없고,어둑 컴컴하여 깊이를 알수 없는 텅빈 허공이나 마찬가지 겠지.
우리는 그것을 신묘한 어둠의 자궁이라는 뜻으로 현빈이라고 말 하는데,
땅 속이 돌로 꽉 차 있던, 물이 차 있든,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든 상관없이 그것은 보이지 않고 알 수 없으니깐 바로 현빈 그자체야,
사실은 이 보이는 현상세계도 모두가 현빈 그 자체일 뿐이지 달리 아무것도 없어"


백은이 노자 도인의 말을 알아 듣는 척 하면서 머리를 조아리는 듯한 자세를 짓는다.

노자도인이 제자 백은에게 다시 표주박을 건네준다.
둘이서 한모금씩 두어번 주고 받았는데도 표주박물은 아직까지 8부정도 남아 있었다.


백은이 다시 말을 꺼냈다.
"땅속에 자연 물저장고가 있으니깐, 이런 오랜 가뭄에도 이렇게 물이 졸졸 흘러 나오지 않읍니까?"


"그래,  저 깊은 땅 속에 거대한 자궁이 있으니깐 저렇게 물을 졸졸 흘려 주는 것이지.
마치 말이야-, 저 실날같이 보이지도 않는 샘구멍이, 이 내면의 깊은 곳으로 부터 태어나는 의식의 샘구멍 같단 말야,
일단 거기서 나왔다하면,  마치 물 한방울이 온갖 세상을 돌고 돌면서 저절로 흘러다니듯이,
모든 삼라만상이 나와서 저절로 돌아 다니게 된단 말야.
저 옹달샘 샘구멍이 바로 자네가 나온 그구멍과 비슷하다네."

 

"저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는데요?"


"자네 육체와 마음은 그 어떤 여인의 뱃속에서 나왔을 지는 몰라도,
자네자신은 나오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
그 자네 육체를 낳아 주었다는 자네 어머니라는 여인은 자네의 마음 속에서만 나타난 것이고, 원래 자네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었"

 

다시 백은이 노자도인에게 표주박을 건네었다.
노자 도인이 말씀하셨다.
"모든 자네주변에 나타나는 것들은 부모뿐 아니라, 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이 노자의 행색까지도 모두가 허망한 그림자야,
자기 마음의 그림자에 너무 혹 하지 마-.
그런 마음의 변상에다 주의를 주지 말라구,
자네는 보이고 만져지고 느껴지고 알려진 것이  아냐.
모든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 원래 자네야-
저 옹달샘물이 밖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라구,
물이 흘러가면서 조금이라도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는가?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모든 것은 저절로 진행되게 되어 있어,
옹달샘 샘구멍에서 나온 물이 세상 곳곳을 적셔주며 흐르는 것처럼,
이 의식도 저절로 흘러나와서 육체와 마음,이 세상을 이끌고 아무 이유없이 나온 것이야.
의식은 그나름대로 저절로 모든 일을 진행시키는거야,
육체 마음과 의식은 자네자신이 아냐,
"나"라는 의지있는 개인이란 것은 원래 환상이라구,
저- 옹달샘이 자네한테 큰 공부를 시켜 주었구먼,
자- 물한잔 더 마시고, 옹달샘의 谷神한테 큰 절 한번하고 이제 떠나 봄세"

 

백은이 다시 물었다.
" 그렇다면 스승님, 이 나타난 현상계 안에는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저는 그럼 지금 무엇을 해야 되나요?"


"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되는대로 살아-, 그렇게 묻고 있는 놈이 누구야?
도데체 무엇이 지금 그렇게 묻고 있는거야?"


" 제 마음이 묻고 있읍니다"


"자네 마음이 있는가? 한번 찾아 보게, 마음이 있으면 나한테 보여줘 봐-"


" 마음은 보여 줄수 있는 물건은 아니죠.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스승님도 보고 계시니깐, 제 마음을 보고 계신 것 아닌가요?"


" 보고 있는 것은 자네에게나 나에게나 공통되는 하나가 보는 거야.
  그것이 나이기도 하지만, 자네이기도 하고,저 옹달샘이며, 모든 것의 하나야."


" 그 하나가 되고 싶읍니다. 스승님!"


"바로 지금 자네가 그것이야"


"저는 모르겠읍니다"


"그럼 그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를 찾아 보라구,
가만히 마음 넘어를 지켜 보고 있어!
가만있자 , 그렇다면, 내가 숙제 하나 줄테니, 그걸 항상 붙들고 있어"


"네-- 스승님, 감사합니다"


" 저 샘구멍 속으로 물이 나오는 곳을 쫏아서 기어 들어 가야 돼 !

자네 지금 바로, 저 샘구멍 속을 자세히 드려다 보게, 뭐가 보이나? "


"쌀알 만한 샘구멍이 있읍니다"


" 샘구멍 속에는 뭐가 보이나?"


"그냥 구멍만 뚫려 있읍니다"


"아주 자세히 들여다 보라구, 무언가가 있을 꺼야"


백은이 옹달샘 앞으로 머리를 디밀고 자세히 드려다 보고 있는데,
갑잡스럽게 노자 도인이 백은의 뒤퉁수를 손바닥으로 잡고
머리를 작은 옹달샘 속에다 쳐 박았다.

" 자꾸 들여다 보지만 말고, 직접 샘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 가야지!"


한순간에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백은은 놀래서 잠깐 동안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주 짧은 순간에 얕은 옹달샘 물에 얼굴을 파뭍혔서 정신을 잃었지만
이내 옹달샘물에 시원하게 얼굴을 잠겼기 때문인지,
정신이 맑아지고, 온세상이 밝아져 온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어때? 시원하지? "
"--------------"


흙과 물로 젖어있는 얼굴로 자기자신을 잊은 듯 멍하니 있던 백은은
입이 굳어 버린 듯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한동안 그렇게 멍하게 정신이 없이 서 있던 백은은 갑자기 실성한 것처럼,혼자서 싱긋히 웃다가, 점차로 정신이 돌아 오는 듯 했다.
갑자기 물묻은 얼굴을 한 손으로 훔치고는, 옷 매무새를 바로 잡으며,
노자 도인 앞으로 와서 엎드려 절을 올린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왜 그러나? 뭘 봤어?"
"아무것도 못보았읍니다. 아무것도-"
"좀 냄새는 나지만, 아직 멀었어, 그게 그런게 아냐"
"네, 단단히 명심하겠읍니다"
" 오늘 일은 바로 잊어 버리라구, 내버려 !"
"네, 스승님"

 

노자도인과 제자 백은은 다시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해는 서산마루에서 찬란한 황금 빛을 온누리에 내비치고 있었다.
마침 서녁 하늘에는 얇은 새털 구름이 석양빛에 황금색과 주황색으로
물들어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노자도인은 앞서가는 제자 백은의 뒤퉁수를 쳐다보면서,
싱긋히 속 웃음을 지으며 뒤따라 가고 있었다.
*****
- 여러분들 이제 타임머쉰에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

 

이제  문장해석을 해 보겠읍니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谷 ; 골, 동풍, 막히다. 神 ; 귀신,신령, 불가사이, 영묘하다.
是 ;이것, 옳다, 謂 ; 이르다, 힘쓰다, 까닭, 玄 ; 검다,오묘하다, 깊다, 牝 ; 암컷,골짜기,계곡,

谷神不死 :
< 가장 깊고 낮은 곳에 임하고 있는 내면의 신령은 죽지 않고 영원 불멸한다.>
여기서 谷은 높은 산과 산사이의 움푹 들어간 계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谷이란 깊은 골을 말합니다만, 땅표면에 오픈되어 있는 계곡이 아니라,
완전히 막힌 동굴과 같은 의미입니다.
만일 산간계곡같은 의미로 해석을 하면, 뒤의 문장인 玄牝이라는 글자의 의미와 통하지가 않죠.


여기서 谷은 옹달샘 지하에 있는 보이지 않는 동혈(洞穴)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왕필이 주석에는 이것을 계곡의 텅빔과 모든 것을 수용하고 기른다는 의미로 주석을 했읍니다만,  산간 계곡이라고 하면 일단 의식표면(지표면)에 들어나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 넘어에 있는 절대본체의 개념과는 어긋나게 됩니다.

 

이 谷자를 형상화 한 것을 분해를 해보면,
어떤 책에서는 땅 속에 있는 옹달샘에 물이 차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맨 위의 두점은 여자 유방이고, 그밑에 사람人자는 두 다리이며,밑의 입口자는 여성성기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파자해서 분해를 해 보면 "지하에 있는 샘"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으며, 또 "여성적인 자궁"이라는 의미도 있읍니다.

따라서 "谷神"은 옹달샘으로 비유하자면 지하 깊숙히 묻힌 지하수 동혈을 의미하며,의식으로 비유하자면 의식을 초월한 내면 깊은 어둠(모름) 속의 내궁(內宮)인 절대본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지하에 있는 자궁같은 동혈(洞穴)이라는 의미로 해석을 했읍니다.

 

 谷神不死-< 의식 넘어 그윽하고 깊은 골 가장 낮은 내면바탕에 머물고 있는 신령한 道는 죽음이 없다>-


이렇게 번역이 되었읍니다.

참고적으로 하상공본은 谷을 穀자로 해석하여 특정 인체부위의 養身을 하는 중심으로써 해석을 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養身論은 배제하겠읍니다.

 

是謂玄牝- 직역을 해 보면,
<이것은 현묘한 내궁(內宮)이라고 한다>. 이렇게 번역이 됩니다만,
玄이란 글자는 검다, 신묘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정신적으로나 의식 측면에서 쓸때는 "모른다"는 "無知"의미로도 씁니다.
즉, 의식의 경계선 넘어, 모른다고 말하는 "나"라는 주체도 없을 때의
아주 깊은, 자기자신의 존재조차 모르는 완전자각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도덕경에서 일원적인 절대상태에서는 이 玄자가 자주 나오는 것이죠.

여기서 牝을 내궁이라고 한 것은, 원래는 여성의 생식원인 자궁(子宮)이라고 해야 되겠지만, 자궁은 여성생리적인 기관의 이름이고, 육체의 한 부위 명칭이므로,道의 본체를 상징하는 개념어로는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되어,동혈(洞穴)의 형태를 지니되 내면 깊숙이 있다는 의미로 내궁(內宮)이라는 명칭을 창작해서 썻읍니다.


玄牝이란 전체를 수용하는 포용성의 무한한 내면의 동혈(洞穴)을 의미하는 것이죠.

牝자를 "암컷"이라는 단어로 대부분 번역을 했는데, 암컷이라는 생명의 생산성과 수용성에 대한 의미전달이 "암컷"이라는 단어로써는 의미전달이 어렵고, 육욕적이며 성적인 어휘감으로 인해 문장의 전체적 조화성이 깨질 뿐아니라, 도의 본체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맨처음에는 자궁이라고 번역하려다가, 다시 내궁이라고 아예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냈읍니다.

 

이 현빈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억지로 번역어에만 고집하다 보면 아주 괴상망칙한 번역이 될 수가 있읍니다.
따라서 그대로 현빈이라고 그대로 쓰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빈이라고 그대로 쓸려면, 이에 대한 간단한 해설을 그 앞에  덧붙임으로서 보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확실하게 이해되어야 하겠죠.

 

이 현빈을 옹달샘으로 비유하자면 지하에 있는 지하수 空洞을 의미하며,
의식 측면에서는 마음과 의식을 초월한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절대 본체를 의미합니다.
이 현빈이라는 말을 노자가 의도적으로 고유언어를 창안을 했다기 보다,
도의 본체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상징적 단어를 만들어 쓰신 것 같읍니다.
이 6장에서는 옹달샘에 대한 비유로써, 자연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도를 다른 상황에서 비유적으로 쓰신다면, 또 다르게 그상황에 맞는 상징어를 썼겠죠.

 

의역을 해보면,
<이것을 현묘하게 깊은 어둠의 내궁(內宮 또는 洞穴)이라는 의미로, 현빈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렇게 번역이 됩니다.

 

이제 곡신불사,시위현빈,부분에 대한 다른 번역서들을 들여다 보겠읍니다.
-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그윽한 암컷이라고 한다-
-계곡의 작용은 그침이 없으니, 이것을 현묘한 암컷이라고 한다-
-골짜기 신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묘한 암컷이라고 한다-
-곡신은 죽지 않으며, 어두움을 지닌 여인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곡신, 즉 텅 비어 있으면서 신묘한 도는 그 조화가 영원토록 무궁무진하다,
이곡신은 천지만물을 낳는데, 이를 현빈이라고 한다-
-계곡의 하나님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가물한 암컷이라 한다-
-신이 죽지 않고 영원불사하는 계곡이 있으니, 그 골짜기의 이름을 일러 현빈이라 하느니라-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根 ; 뿌리, 기초

玄牝之門- <현빈에는 문이 있는데,>
是謂天地根-<이것을 천지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현빈의 문이라는 것은,
옹달샘으로 비유하자면 지하의 지하수 동혈(洞穴)로 부터 지상으로 솟아 올라오는 샘구멍을 말합니다.
의식측면으로 말하자면 절대 본체에서 순수의식이 나오는 지점을 말합니다.
즉 존재의식이 나타나는 지점이죠.

반대로 제4장에서 보듯이 수행자가 삼매로 들어가서 "나라는 의식"이 사라지는 지점을 말합니다.
4장 맨 마지막에 "내가 어디로 부터 나왔는지 모르겠네, 신보다도 먼저 있었나 보다" 하는 말이 "나"가사라진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경지로 들어가는 입구죠.
모든 수행자들이 이곳을 목표로 수행을 하면서 깨달음을 염원하고 있읍니다.
이 존재발현 핵점은 의식이 처음 나타나는 지점이면서, 역으로 수행자가 고도의 경지에 들어서는 의식의 중심입니다.

 

보통 수행자들에게 "지금 현재"라는 것은 바로 이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외면적인 마음으로는 이지점을 포착할 수는 없지만,
마음을 넘어서면 이지점에 저절로 안주하여 망상으로부터 벗어나 고요해 집니다.
이 존재발현핵점은 시간과 공간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모든 세상의 경계가 나타나기 전의 순수존재의식상태이므로 "空"상태라고도 하죠.

 

라마나 마하리쉬가 내가 있다"라고 표현하는 곳이 이곳이며,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가 "내가 있다"앎이라고 말하는 지점이 이곳입니다.
이지점에서 절대본체쪽으로 통과해 들어가기가 마치 코끼리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다는 위없는 최고경지의 바로 아래단계죠.


여기서 부터 시간과 공간이 나타나고 삼라만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육체와 동일시하여 자신을 하나의 개체라고 여기면서 고통을 받기 시작하는 마음에 그원인을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이곳이 바로 절대와 의식의 완충지대이며, 의식에서 경계가 사라진 순수한 상태입니다.

 

두문장을 합쳐서 의역을 해 봅니다.
<이 현빈이라는 컴컴한 내면의 동혈에는 문이 있는데,
이문이 천지(의식)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현빈과 내면의 동굴을 이중으로 삽입한 것은 현빈이 어떤 것인가를 이미지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글이 길더라도 좀 자세하게 묘사했읍니다.

 

다른 번역서들의 내용들을 훑어 보겠읍니다.
-'그윽한 암컷'의 문을 일컬어 하늘과 땅의 뿌리라고 하는데-
-현묘한 암컷의 문, 이것은 천지만물의 근원이네-
-현묘한 암컷의 문을 하늘과 땅의 근원이라 하느니라-
-어둠을 지닌 여인의 문은 천지만물의 근원이며-
-이 깊고 현묘한 생식의 문은 천지의 근원이다-
-그 계곡의 문이야 말로 천지가 시작된 것이니-
-가물한 암컷의 아랫문, 이를 일컬어 천지의 뿌리라 한다.-

 

ㅋ ㅋ ㅋ-
 제가 이들 여러가지 번역내용을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정말 아랫배 힘쌀이 아플정도 였읍니다.
그렇다고 위 번역내용들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번역자체야 글자 그대로 최대한 머리를 써서 표현했겠죠.
그러나 노자가 말한 핵심은 외부적인 형태가 아니라, 의식 내면 깊은 곳을 묘사한 말이므로 거기에 걸맞는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야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입니다.

 

綿綿若存 用之不勤
綿綿 ; 끊어짐없이 이어지다. 연이어 계속되다.
若 ; 같다,어리다,이와같다,만약, 存 ; 있다.묻다,살아있다.
用; 쓰다,쓰이다, 작용, 勤 ; 부지런하다,근무하다,힘쓰다.

 

綿綿若存 ; <끊임없이 연이어지며 흐르는데, 마치 있는 것과도 같다.>
옹달샘 측면으로 말하자면 옹달샘에서 나오는 물이 중간이 그치는 일없이 계속 나오는데 마치 흐르는 것이 아니고, 움직임없이 그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의식측면으로 보자면, 의식은 미세한 파동성의 움직임으로 항상 흐르는데, 그 흐름은 감지가 안되고 마치 의식이 흐르지 않고 그냥 그자리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이세상도 사실은 의식의 움직임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구름이 하늘에서 흘러가고,밤이 가면 낯이 오며, 바람이 흘러가고, 온갖 도시의 잡음소리가 들려 오는 것들이 모두 의식의 움직임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질 못하죠.
자기가 지금 있다고 느끼는 것은 몸의 느낌만 가지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우주전체가 나의 의식으로서, 바로 내가 전체우주자체로써 존재하는 것이죠.
하늘과 우주전체가 나의식 안에 있다고 느껴야 수행자로써의 본격적인 입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세상의 모든 경계와 움직임들이 중요성이 없이 마치 꿈결같이, 영화장면처럼 그저 부질없이 흘러가는 것으로 그저 그러하다는 느낌만 있읍니다.

이상태가 바로 육체의 동일시상태에서 의식의 (뿌리)상태로 전환된 경지입니다.
이런 경지에서는 이제 억지 수행방편에서 벗어나고, 자기가 행위자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야만 하죠.


그래서 항상 전체의식과 하나상태에 있으면서, 의도적인 수행은 안하고, 가만히 머물러서 말없이 지켜보는 자연주시상태의  "있는 그대로"의 수행아닌 수행으로 익혀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인가 한다는 행위자에서 항상 물러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할일도 안하고 빈들빈들 앉아있거나 눈감고 조용히 앉아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죠.
할일이 있으면 하되, 자기가 무엇인가 이룩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뚝 떨어진 관찰자의 무심으로 해야죠.
모든 일이 수동적인 입장에서 되어지는 것처럼 느껴야 하며, 그래야 "나라는 에고"가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用之不勤 < 작용하는데 애쓰지 않고 자연적으로 흐른다>
옹달샘 비유측면으로 보자면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계곡의 돌틈을 부드럽게 지나치고 개울에 합쳐져서 온갖 식물의 생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 물 스스로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그렇게 무위적인 작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의식측면에서도 존재의식이라는 것이 저절로 나타난 것으로써, 어떤 특정의 주인공이 있어서 주인공에 의해서 흐르며,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자연에 의해서 저절로 흐르면서 일들이 생긴다는 것이죠.
즉 무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죠.

 

그렇게 자연적으로 생겨서 저절로 작용을 하는데, 공연히 사람이라는 개체에고는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착각하여 행위자로서 책임을 느끼고 억지로 용을 쓰며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죠.
그런 틈바구니에서 마음에 갈등과 욕망 질시와 경쟁, 그리고 고뇌가 가중되는 것이죠.
그러나 의식자체는 저절로 나온 것이고, 시간이 되면 저절로 無상태로 돌아가는데, 사람은 자기가 의식의 주인공이고, 행위의 주인공이라는 자아의식 때문에 항상  마음 고생을 하는 것이죠.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리고, 자연적으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가는 것이 바로 노자가 도덕경에서 매장마다 강조하는 무위적인 자세입니다.
用之不勤도 바로 이러한 의식의 무위적인 흐름에 대하여 맨 마지막 종결 어구로 넣은 것 같읍니다.
옹달샘의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며 작용하는 것처럼, 의식의 흐름도 무위적인 작용으로 흐른다는 말씀입니다.

 

두문장을 번역하면 이렇읍니다.
<이것에서 나오는 의식의 흐름은 끊이지 않고 연이어서 흐르는데,
마치 그대로 (멈춰서서)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오 .>

<이 의식의 작용은 스스로는 아무런 애씀도 없이 저절로 흘러가는 것이외다.>

 

그럼,다른 번역서들의 내용들을 보겠읍니다.
- 겨우 이어지고 이어져서 존재하는 듯하면서 작용하지만 힘들어 하지 않는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네-
-끊임없이 겨우 존속하는 듯 하지만 그것의 작용은 지치질 않는다-
-그작용은 끈임없이 이어지고 하염없읍니다-
-이어지고 또 이어지니 있는 것 같네.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도다-
-그로부터 이어지기가 영원하지만 결코 쓰이고자 애쓰지 않는다-

 

제6장은 글자수는 아주 작은데, 특정단어는 이중적인 상징성과 비유의미가 복합되어 있어서 그 글자의 의미와 내재적인 개념을 연결시키는 데 쉽지가 않았읍니다.
깊은 산속의 옹달샘을 비유해서 도의 본체와 그 작용을 묘사한 것인데,
단어가 외부적으로는 옹달샘 주변의 사물을 표현한 것 같은데,
실지로는 의식 내면을 의미하므로 이러한 이중적 상징어와 비유어들을 어떻게 번역에 동시적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지 한때 난망했읍니다.


이러한 두가지 상징어를 동시에 포함한 경우는 그 본문번역에도 그것을 반영하야 하는데,실질적으로는 번역문이 너무 복잡하고 길어지기 때문에 일단 본문 번역은 의식측면에서 단일 번역을 해 보고,

옹달샘 비유면에서는 해설편에 별도로 꽁트적인 형식으로 표현하여,
보시는 분들에게 가능하면 이해가 쉽도록 작성을 했읍니다.

---노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