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成語

각골명심 刻骨銘心[새길 각/뼈 골/새길 명/마음 심] ~~~

예암 노마드 2013. 6. 3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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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골명심 刻骨銘心[새길 각/뼈 골/새길 명/마음 심]

☞뼈에 새기고 마음에 새긴다. 어떤 것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둠.[동]鏤骨銘心누골명심 * 새길 루[참고]좌우명(座右銘)--늘 자리옆에 적어놓고 경계로 삼는 글귀(motto)[예문]조실 옆에 필요 없이 전등이 켜 있는 것을 보시고 시자에게 "끄라." 하신 후 말씀하셨다. "나에게 아무 관계 없는 것이라고 해서 아껴 쓸 줄을 모르는 자는 허공에 큰 빚을 지는 것이니 너희들은 각골 명심하여 저런 전력을 헛되이 소모하지 말라. 그렇다고 해서 쓸 자리에 쓸 줄 모르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원불교 설교문>중에서

■ 각자도생 各自圖生[각각 각/스스로 자/도모할 도/날 생]

☞사람은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한다.[예문]▷ KNCC는 이미 가칭 '남북기독교연맹'의 창설에 의견을 접근시킨 데 이어 오는 8월 19일 금강산에서 남북한 교회대표자들이 합동예배를 갖기로 하는 등 한기총에 비해 한층 더 발빠른 움직임이다. 이와 관련, 한기총과 KNCC가 8.15에 맞춘 이벤트나 북한 포교의 선점 등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교회일치' 없이 '각자도생'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크리스천 시사 클리핑]

▷ 현덕은 서울 삼청동의 한 별장에서 태어났다. 이는 구한말 궁궐의 수비대장으로서 종2품에까지 오른 그의 조부 현흥택(玄興澤, 1858-1924)의 위세를 반영한다. 그러나 그의 부친 현동철(玄東轍)은 금광에 손을 대다 가산을 탕진하고 밖으로 나돌았으며, 식구들은 각자도생으로 친적 집들을 돌며 살았다[현덕문학의 재조명]▷ 그러지 않아도 농토라는 게 남의 소작이 겨우 서너 마지기 천둥지기가 있어 농사 짓는 흉내나 낼 뿐, 그 모자라는 벌충은 식구가 각자 도생으로 여자는 여자대로 시오 리 밖까지 바다 물줄기를 따라나가 조개를 캐다는 밤새 까서 이튿날 새벽에 안팍 오십 리 길을 걸어 항구로 팔러 나간다[경칩]

■ 각자무치 角者無齒[뿔 각/놈 자/없을 무/이 치]

☞뿔이 있는 놈은 이가 없다. 예쁜 꽃치고 열매가 변변한 것이 없다-->한 사람이 여러 가지 재주나 복을 다 가질 수는 없다.[내용]모든 생물은 장점(長點)과 단점(短點), 강점(强點)과 약점(弱點)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작고 힘도 약한 토끼지만 잘 듣는 귀와 잘 뛰는 다리 그리고 한 번에 많은 수의 새끼를 낳는다.  뿔이 있는 놈(角者)은 이빨이 없다(無齒)는 얘기는 장점만 가지고 있는 생물은 없고 단점만 가진 생물도 없다는 말이다 

■ 각자위정 各自爲政[각각 각/스스로 자/할 위/정사 정]

☞사람이 저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는 말로, 전체와의 조화나 타인과의 협력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뻔하다는 뜻.[출전]『左氏傳 』 [내용]춘추시대 송(宋)나라와 진(晉)나라가 서로 협력하였기 때문에 송나라와 초(楚)나라는 사이가 벌어졌다. 이에 초나라 장왕(莊王)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동맹국인 정(鄭)나라로 하여금 송나라를 치게 하였다.

정나라와의 결전을 하루 앞두고 송나라의 대장 화원(華元)은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식사 때 특별히 양고기를 지급하였다. 군사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며 맛있게 먹었지만 화원의 마차를 모는 양짐(羊斟)만은 이 양고기를 먹지 못하였다. 한 부장(副將)이 그 까닭을 묻자 화원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마차를 모는 사람에게까지 양고기를 먹일 필요는 없네. 마차부는 전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말일세." 이튿날 양군의 접전이 시작되었다. 화원은 양짐이 모는 마차 위에서 지휘를 하였다. 송나라와 정나라의 군사가 모두 잘 싸워 쉽게 승패가 나지 않자 화원이 양짐에게 명령하였다. "마차를 적의 병력이 허술한 오른쪽으로 돌려라." 그러나 양짐은 반대로 정나라 병력이 밀집해 있는 왼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당황한 화원이 방향을 바꾸라고 소리치자 양짐은 "어제 양고기를 군사들에게 먹인 것은 장군의 판단에 따라 한 일이지만 오늘의 이 일은 나의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 하고는 곧바로 정나라 군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기 때문에 화원은 결국 정나라 군사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대장이 포로가 된 것을 본 송나라 군사는 전의(戰意)를 잃고 전열(戰列)이 무너졌다. 그 결과 250여 명의 군사가 사로잡히고 사공(司空:토지와 민사를 맡아보는 관원)까지 포로가 되었다. 정나라 군사는 모두 460량의 병거(兵車)를 포획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송나라의 대패는 바로 양짐이 화원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각자위정'했기 때문이다.

비단 군사행동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나 사회의 경영에 있어 전체로서의 조화나 개개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경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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